신용회복경험담
가족을 위해 지고 있었던 무게, 이제는 나를 위한 삶으로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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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은퇴 후 새로 시작한 일상
62세입니다. 퇴직 후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나이에 무슨 일’이라며 주저했겠지만, 지금은 매일 아침 정문 앞을 지키며 인사 나누는 일이 참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퇴직하기 전에는 한 회사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며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아이 셋 모두 대학까지 보내고, 아내와 함께 조촐하게 노후를 준비하려 했죠. 그때까진 제가 채무로 고생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2. 전개: 유학이라는 선택, 그리고 쌓여간 빚
셋째가 해외 유학을 꿈꾸기 시작했을 때, 제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자식된 도리를 다하고 싶었어요. 은퇴 전의 안정적인 신용을 바탕으로 은행 학자금 대출을 시작했고, 생활비 충당을 위해 카드 사용도 늘어났습니다.
4년 동안 들어간 돈은 약 8천만 원. 큰맘 먹고 감당했던 금액이지만, 은퇴와 동시에 상환 능력이 확 줄어들었죠. 경비 일로 버는 돈은 월 180만 원 남짓. 생활비와 아내 병원비를 빼고 나면 빚 갚을 여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자만 내다가 연체가 시작됐고, 어느새 독촉장과 전화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3. 위기: 자책과 침묵 끝에 내린 결정
한밤중에 잠이 안 와 거실에서 홀로 앉아 있던 날이 많았습니다. 아내에게는 괜한 걱정을 주기 싫어 속을 털어놓지도 못했고, 자식들에게는 더더욱 말할 수 없었어요. ‘내가 무리했나’, ‘내 인생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통장 잔액이 8천 원 남았을 때였습니다. 월세도, 공과금도, 카드값도 밀린 상황에서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답이 안 나왔죠. 결국 용기 내서 금융복지센터에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때 심정은... 무너짐에 가까웠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제는 끝을 보자’는 결심도 들었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을 통해 다시 짠 인생의 틀
상담 후 본격적으로 서류를 준비하고 접수까지 걸린 기간은 약 6주. 이후 법원에서 인가가 나오기까지는 약 3개월이 걸렸습니다. 수입과 지출을 검토해 월 29만 원씩 3년간 납부하는 조건으로 변제계획이 인가되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담사 분이 해준 말이 기억납니다. "빚보다 무서운 건, 자기 탓만 하며 버티는 겁니다."
법원 출석은 떨렸지만,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고 판사님도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주셔서 큰 무리 없이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인가를 받은 날, 처음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5. 결말: 지금은 삶의 무게가 아닌 방향을 고민합니다
현재는 변제 1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빠짐없이 납부하고 있고, 생활은 많이 단순해졌습니다. 외식은 줄고, 통신비도 줄이고, 불필요한 소비는 거의 없습니다. 대신, 아내와 마트 장보러 가는 소소한 일상이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요즘은 막내가 취직을 준비 중인데, 그 아이가 어느 날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저도 이제 아빠에게 도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울컥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2년의 변제도 잘 마치고, 제 인생의 마무리를 ‘부채’가 아니라 ‘사람답게 산 흔적’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 중에, 가족을 위해 홀로 짐을 짊어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새 출발의 첫걸음일 수 있습니다.
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