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7.11 17:04

빚의 무게에 짓눌렸던 제가 다시 땅을 딛고 서기까지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1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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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15%)

저는 경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50세 여성입니다. 남편과 함께 농작물을 재배하며 살아가고 있고, 자녀 둘은 모두 도시에서 각자 자리 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자식들 뒷바라지도 끝났겠다 싶어 마음은 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친구가 권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창업 제안을 받고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제는 나도 내 이름 걸고 장사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도시 근처의 상가에 매장을 임대하고, 운영 교육도 받고, 가게 인테리어까지 마무리하니 대출금만 8천만 원, 카드값 포함해서 초기 비용이 1억 원 가까이 들었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25%)

처음 몇 달은 그럭저럭 손님도 오고 매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가 본격화되면서 유동인구가 확 줄었고, 인근에 대형 카페들이 생기면서 매출이 반 토막이 났습니다. 매달 들어가는 임대료와 인건비, 재료비는 고정인데 수익이 줄다 보니 자연스럽게 적자가 쌓였습니다.

결국 운영한 지 1년 5개월 만에 폐업을 결정했지만, 남은 건 총 1억 1천만 원의 빚이었습니다. 은행 두 곳에서 받은 대출이 8천만 원, 카드사 두 곳에 쌓인 카드값이 3천만 원. 농사로는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새벽부터 일해도 통장엔 늘 마이너스였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20%)

진짜 힘들었던 건 남편에게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습니다. 처음엔 잘되면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숨겼고, 나중엔 무서워서 말을 못 꺼냈습니다. 결국 폐업 후 몇 개월이 지나서야 모든 걸 털어놓았고, 남편은 조용히 제 손을 잡아줬습니다. “이런 건 혼자 짊어지는 게 아니야. 우리 같이 해결하자.”

그때부터 개인회생이란 제도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엔 너무 낯설고 무서웠습니다.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빚이 줄지 않고 계속 불어나는 걸 보며 결심하게 됐죠. 상담을 받고 나서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한마디가 절 살렸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25%)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인가까지는 약 6개월이 걸렸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제가 실제로 채무를 감당할 수 있는지, 수입이 꾸준한지 등을 철저히 따졌고, 농업소득 증빙도 꼼꼼히 제출해야 했습니다.

법원이 인정해준 변제계획은 월 28만 원씩 5년(60개월) 동안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총 1억 1천만 원 중 일부만 상환하고 나머지는 면책받는 조건이었죠. 처음엔 낯설고 두려웠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고 다시 시작이다”라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법원에 출석했던 날, 판사님 앞에서 제 상황을 설명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창피함보다는, 이제는 떳떳하게 다시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컸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15%)

지금은 개인회생 인가 후 1년이 넘었습니다. 매달 성실히 변제하고 있고, 더 이상 독촉 전화나 연체 통지서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통장에 잔고가 남아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조금씩 트입니다.

무엇보다도 저 자신을 탓하던 감정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습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 “개인회생 중이에요”라고 말하면 고개부터 숙였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랬으니까"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같은 처지에 계신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채무는 죄가 아닙니다. 용기 내서 문을 두드리면, 제도는 생각보다 따뜻하게 문을 열어줍니다. 저처럼 다시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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