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은퇴 후 맞이한 위기, 그러나 끝은 아니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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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약 15%)
올해로 59세, 저는 30년 가까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2년 전 정년 퇴직을 했습니다. 몸은 성치 않아도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했고, 두 자녀도 이제는 각자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습니다. 퇴직 당시엔 드디어 나도 좀 쉬어갈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막상 일을 그만두고 나니 마음이 허전하더군요. 자존심이랄까요. 그래서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손에 쥔 채, 오랫동안 꿈꿔왔던 고급차를 리스로 계약했습니다. "이제 나도 좀 멋지게 살아보자"는 생각이었죠.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약 25%)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월 리스비가 75만 원, 여기에 보험료와 유지비까지 합치면 한 달에 120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퇴직 후에는 고정 수입이 없다 보니, 처음엔 예금에서 꺼내 쓰다가 이내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게 되었고, 급기야 카드론까지 손을 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스비를 몇 달 연체하게 됐고, 연체 이자까지 붙으며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그 무렵 창고 정리 아르바이트를 구해 월 80만 원 정도 수입을 벌었지만, 이자도 감당 못할 수준이었죠. 채권자들의 연락은 날마다 거세졌고, 가족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만 끙끙 앓았습니다. 리스 회사에서는 차량 회수 조치까지 경고했고, 그때서야 "이건 정말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약 20%)
결정적인 계기는 아내에게 들킨 날이었습니다. 카드 대금 연체로 우편물이 집으로 오고, 통장이 압류되면서 더는 숨길 수 없게 됐죠. 아내는 말없이 우는 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제라도 솔직해져서 다행이야. 우리가 같이 해결해보자."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고 초라했어요. 하지만 자식들에게까지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결국 개인회생 상담을 받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상담실에 들어가던 그 순간, 발걸음이 참 무거웠지만, 솔직히 말하고 나니 처음으로 숨통이 트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정말 큰 위로가 됐어요.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약 25%)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3개월이 걸렸습니다. 준비할 서류가 많았고, 이전 카드 사용 내역과 차량 리스 계약서도 제출해야 했습니다. 제 총 채무액은 5,500만 원이었고, 법원이 정한 변제 계획은 매달 29만 원씩 3년간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총 변제금은 약 1,044만 원이고, 나머지는 일정 조건 하에 탕감됩니다.
법원 출석은 한 번 있었는데, 판사님이 “연령과 소득 상황, 채무 구조를 고려할 때 성실히 갚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시더군요. 긴장이 많이 됐지만, 절차는 차분하게 진행됐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변제 초반, 병으로 아르바이트를 잠시 쉬게 되었을 때였어요. 그때는 가족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납부를 유지했습니다. 지금은 건강이 조금 회복되어 다시 일을 하고 있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약 15%)
개인회생 인가를 받은 지 1년 4개월이 지났고, 변제금도 성실히 납부하고 있습니다. 채권자 연락이 사라지자 정신적으로도 훨씬 편안해졌습니다. 차는 반납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더 가벼워졌습니다. 아내와 함께 주말마다 산책을 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는 재정적으로 욕심내지 않고, 있는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살아가려 합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후회도, 자책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개인회생은 실패가 아니라 회복의 과정입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59세에 다시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