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자식을 위한 선택이, 내 인생의 빚이 되기까지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8.0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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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편의점 점장으로 일한 지도 어느덧 8년이 넘었습니다. 매일 아침 6시면 문을 열고, 자정까지 근무하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조용히 살아가는 평범한 40대 여성입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가족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고혈압과 당뇨로 거동이 불편하시고, 아버지는 연로하셔서 병원 진료가 잦습니다. 제 삶의 중심은 늘 부모님이었고, 그다음은 조카였습니다. 조카가 제 자식처럼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 뭐든 해주고 싶었어요.
전개
문제는 조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원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혼자 벌어서 부모님을 부양하는 제 형편에 해외 유학은 분명 무리였지만, 조카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모, 내가 잘해서 꼭 보답할게." 그 한마디에 결국 유학 자금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고, 생활비를 카드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3천만 원으로 시작했지만, 환율이 오르고 현지 생활비가 예상보다 더 들면서 카드론과 현금서비스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4년 만에 빚은 8천만 원이 넘었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급기야 월 상환액만 150만 원을 넘기면서 생활 자체가 흔들렸습니다.
위기
가장 힘들었던 건 작년 겨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고, 동시에 카드 연체로 독촉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제 이름으로 등록된 점포도 압류 위기에 놓였고, 전 잠도 못 자고 매일 울기만 했습니다. ‘나 하나 없어지면 다 끝나는 거 아닐까’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을 만큼 벼랑 끝이었어요.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하던 중, 동네 지인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개인회생’ 제도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처음엔 수치스럽고 두려웠지만,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하고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상담실 문을 여는 그 순간,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내 사정을 털어놓았거든요.
해결
상담 후 준비를 시작했고, 서류 제출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성실하게 일해온 기록과 부양가족이 있다는 점이 인정돼 인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월 35만 원씩 3년간 상환하는 계획으로 진행 중입니다. 처음엔 이마저도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막막하던 이자와 채권자 연락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법원 출석 날은 아직도 기억나요. ‘내가 죄인처럼 서 있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컸지만, 판사님께서 “성실히 상환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하셨을 때 조금은 위로가 되더군요.
결말
지금은 1년째 변제를 성실히 이행 중이고, 조금씩 일상에 여유가 생기고 있습니다. 빚이란 굴레에서 벗어나니 조카에게도 미움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제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언젠가는 작은 자영업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꿈도 생겼습니다. 같은 처지의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은, ‘혼자서 끌어안지 마세요.’ 용기 내서 상담 한 번 받아보세요. 제2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됩니다.